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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t and the poems¹

 

詩人與詩

SOUTH KOREA

一九六一年生,韓國首爾人。國立中山大學中國文學博士。專長為台灣文學、中國現代文學、比較文學、文學評論。現任修平科技大學觀光與創意學院教授兼院長、台灣現代詩人協會理事長、趙明河義士研究會會長等職。論著有《中國早期三大新詩人研究》、《戰後台灣現代詩研究論集》等;翻譯有《台灣文學史綱》、《台灣新文學運動40年》、《陳千武詩選》、《余光中詩選》、《鄭烱明詩選》、《陳黎詩選》等韓譯版20多冊;《半島的疼痛:金光林詩選》、《文德守詩選》等以上華譯版。

Kim Sang Ho

金尚浩

韓國

현대시는 결코 지역성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확실한 세계적인 산물이다. 세계의 보편적인 성격과 지역의 특수한 성격을 어떻게 조화시켜 현대시의 향방을 찾느냐 하는 것이 아시아 시인들의 공통된 목표일 것이다.
아시아 시인들의 교류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金光林(1929-)과 천첸우(陳千武, 1922-2012)의 말에 의하면 1977년 3월 천첸우 부부가 일본을 방문하는 길에 서울을 경유하며 김광림을 처음 만났는데, 당시 서울의 고궁인 경복궁을 둘러보며 현대시의 창작과 활동 등 여러 가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김광림이 구상한《아시아 현대시집》출판 편집 계획을 가치있게 논했는데 천첸우도 매우 찬성했다. 김광림은 천첸우에게 아키타니 유타카(秋谷豐, 1922-2008), 다카하시 키쿠하루(高橋喜久晴, 1926-2006)를 만나기 위해 일본에 간 김에《아시아 현대시집》출간을 언급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날 일본으로 출국한 천첸우는 다카하시 기쿠하루를 만나 구체적인 출판 계획을 검토했다.
한국과 대만은 일제 강점기 동안 각자 민족이 가지고 있던 언어를 빼앗겼고 일본어를 강요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 사실은 양국에 어떤 고민을 안겨주었는가? 시문학을 통해 교류하는 동아시아 시인의 뼛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일본어는 아마도 밉살스러울 만한 언어다. 특히 일본어로 인해 박해를 받았던 천첸우, 김광림 두 사람은 일본어의 부정적인 체험을 반전시켜 오히려 자신의 민족 언어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며 스스로를 긍정했다. 일본어의 쓰라린 기억을 저마다의 민족어를 드높여 빛나게 했던 것이다.
아시아 시인 교류의 적극적인 의미는 서로 다른 언어 체계에 있는 현대 시인들이 서로 다른 언어의 표현 방식에 따라 창작한 시를 한자리에 모여 서로 관찰하고 배우며 서로가 가진 언어에 대한 반성으로서 각자 자신의 나라 시의 전통을 더욱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의미는 사상성과 각자의 입장을 뛰어넘는 것으로 평등하고 화목하며 친근한 태도로 아시아의 현대시와 문학을 전개해 나가는 것이다.
1.아시아시인회의: 1980년 11월 23~25일, 일본 地球詩社 주최로 ‘도쿄국제시인회의’가 개최되었다. 또한1982년 11월 14~17일까지 대만 삿갓(笠)詩社 및 타이중시립문화센터 주최로 타이베이에서 ‘한대일 시인친목회’가 개최되었다. 이 기념으로 《아시아현대시집·제1집》이 출간되었고, 아시아시인회의의 서막이 열렸다. 당시 삼국 시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언어와 국경을 넘어 열띠게 시를 논했던 상황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천첸우, 김광림, 아키타니 유타카가 공동 진행을 맡았다. 바이츄(白萩·1937~2023), 다카하시 키쿠하루 등 총 67명이 참가했다.
1995년 8월 24~28일까지 대만 중부 풍경이 수려한 일월담 교사회관에서 ‘95 아시아 시인 회의(제5회)’가 개최되었다. 이 대회의 주제는 ‘21세기 향한 시문학’으로 아시아 문화와 문학의 미래상을 논의한 뒤 ‘도전 및 응답’, ‘아시아 시의 빛과 그림자’라는 두 개 소주제를 다뤘다.
2.동아시서전: 아시아 현대시집은 총 6집까지 출간되었다. 시인의 독자적인 시세계와 각국 현대시의 특성을 한눈에 볼 수 있음과 동시에 아시아 현대시 전체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1996년 이후엔 한대일 삼국에서 ‘아시아시인회의’가 열리지 않음과 동시에 ‘아시아현대시집’ 출판도 계속되지 못한 상황에서 천첸우, 김광림, 야마구치 사토시(山口惣司, 1934-)가 논의를 거쳐 이후 매년 한대일에서 번갈아가며 ‘동아시서전’을 열기로 합의했다. 동아시서전은 2006년까지 열렸다. 같은 해 제9회 동아시서전이 끝난 후 7년 가까이 한대일은 다시 아무런 교류가 없었다.
3.아세아시감상축제: 한국과 대만 양국이 과거부터 이어온 현대시 교류의 정신을 계승하여 2013년 11월 필자의 소개와 주선으로 타이베이시 시장 관저 카페에서 ‘아시아시 감상축제’ 제1회를 개최한 이래 매년 돌아가며 2019년 제7회까지 개최했다. 그후 코로나19로 2022년까지 멈췄다가 금년 10월 서울에서 제8회 아시아시 향연이 재개될 것이다.
4.대만시에 나타난 주제: 대만의 현대시는1923년 신시운동이 일어난 이래로 사실주의가 주류가 된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대만현대시와 사회 현실은 극도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광복 전후의 시인을 막론하고 삶과 현실의 존재의식이 강하게 부각되었고 시대적 현실과 사회의 다양한 면을 투영했다. 1960년대 대만 현대시는 “정부 당국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추진된 반공 문예, 현대시에 대한 전통 문화의 반대와 억압, 5·4문학 전통과 대만 본토문학 전통의 이중 단절”이 있었다. 여기서 광복 후 대만의 현대시는 모두 일종의 ‘현실론’적 연장의 변형이었다. 다시 말해 시인들은 문학이 ‘현실을 반영한다’는 기본 입장을 벗어나지 않았다. “70년대 현실과 관련된 시들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뉘었다. 하나는 ‘이곳을 가까이서 보는’ 현실이고, 다른 하나는 ‘저쪽을 멀리 바라보는’ 현실이었다. 전자는 주로 대만본토 작가였고, 후자는 중국 대륙에서 건너 온 시인들이었다. 전자의 경우 생활공간이 고난에 직면해 미학 자체가 과분한 용어일 수 있었고, 후자는 시의 도구화가 시 존재에 물음표를 던지게 하였다. 전자는 확실하게 안정된 현실이었고, 후자는 ‘고향만 주시하는 것을 현실로 삼았다’. 전자의 눈에 후자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었다.
5.한국시에 나타난 주제: 한국에서는 1910년부터 1920년대 초반의 신체시가 정형화된 형식을 부정하고 산문시 형식으로 근대개화사상의 산물을 만들어냈다. 20년대는 한국 현대시의 태동기라 할 수 있다. 40년대는 역사의 전환기로 제국주의에 의해 말살된 언어정책으로 시인들이 우리말의 시를 보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시기였다. 50년대의 한국 시인들은 모더니즘과 애국적인 작품을 써서 한국전쟁의 파괴를 극복했다. 1960년대는 4.19와 5.16 등 민족의 운명을 바꾼 역사적 사건들을 겪으면서 시인들은 생명력과 전통 서정주의의 르네상스를 수용하며 한국 현대詩史의 전환점이 됐다. 70년대 한국 시인들은 그 독창적인 構想과 형식으로 인해 냉랭한 격리와 부당한 대우에 직면했다. 80년대는 한국에서 “시단의 폭풍”이라고 불린 이 시기를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80년대 초반에는 정치문학 잡지가 범람했고, 후기에는 자유주의가 성행하여 많은 사람들이 정치 환경이 개선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그랬다. 40~80년대 한국 현대詩史에서 발견할 수 있는 두 가지 이정표는 첫째 현실에 대항한 정치적 입장, 둘째는 자아에 대한 무지로 맹목적으로 심미적 대항을 하고 있었다. 1990년대의 시는 앞의 대립되는 두 입장을 타파하며 기이하고 조화로운 통합을 하고 있다.
6.일본시에 나타난 주제: 일본에서 “현대시가 형성한 역사는 한편으로는 전통 7.5조와의 대결, 즉 형식과 언어 변혁의 역사이다. 다른 한편으로 시인 자신의 견고하고 파괴되지 않는 근대적(현대적) 주체를 세우고 시인 내부에서 발견한 현대적 지성을 얻는 역사였다. 전자는 다이쇼(大正) 중기 口語 자유시 운동 이후 상당히 좋은 결과를 얻었다. 후자는 유럽 아방가르드 예술을 이식하여 일본에서 모더니즘 광풍, 미래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여러 실험과 운동을 일으켜 다이쇼 중기부터 쇼와(昭和) 10년대까지 찬란한 꽃을 피웠다.” 메이지(明治) 시대의 새로운 소리를 노래하려는 ‘新體詩’ 운동으로 탄생한 소리는 사람들의 가슴과 사회 각 구석에 울려 퍼졌다. 신시운동은 메이지, 다이쇼, 쇼와 각 시대를 거쳐 110여 년 동안 지금까지 계속돼 왔으며, 각 시대의 풍모를 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2차 대전 후 일본의 현대시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전쟁 전과 詩史를 부정한 이중적인 성격을 계승하고 있다.
끝으로 동아시아의 지역 내에는 역사적으로 장기적인 문화 교류와 상호 영향의 실적이 있지만 서로 다른 지리적 요인과 사회적 현실이 이질적인 문화 생태를 낳았다. 근대 동아시아는 일본을 제외하고 歐美에 뒤처져 일반적으로 구역 밖과 구역내 식민주의의 통제와 박해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대부분 해방, 독립,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 처지와 과정의 순행과 역행 정도가 달랐고 성과도 차이가 있었다. 아시아 현대문학의 발전은 보편적으로 歐美의 영향을 받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어떻게 하면 서구 상황과 동시 발전을 유지하고 동양 특유의 이질성을 남길 수 있는지는 아시아 시인들에게 중대한 도전이 되었다. 아시아 시인의 언어는 다르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詩心은 국적과 이데올로기, 인종을 초월하고 있다. 현대 산업화 시대에는 시 자체가 문화의 한 역할을 하고 인간과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을 탐구해야 한다. 이는 갈수록 복잡해지는 국제화 사회에서 오늘의 시인이 가야 할 방향이다. 문학적으로 성장하는 아시아 시인들은 과거 식민지배국의 강력했던 문화나 현재 歐美의 패권 문화를 깊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으며 부지불식간에 자국의 문화적 함축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하고 있다. 아시아는 크게 다른 처지에 놓여 있지만 각국의 시인들은 이미 유사한 감정적, 정신적 고민과 좌절, 희망을 경험한 바 있다. 결국 순수함과 예리함의 공통된 요소는 인류 미래의 밝은 등불인 것이다.

翻譯——筆者自譯

아시아 시단의 관찰:한국, 대만, 일본을 중심으로

  現代詩絕不必拘泥於地域性,確實是世界性的產物。應該怎樣把世界普遍的性格,與地域的特殊性格互相配合起來,尋找現代詩的走向,這應該是亞洲詩人的共同目標。

  亞洲詩人的交流,是如何開始的呢?根據金光林(1929- )和陳千武(1922-2012)所說的,在 1977 年 3 月,陳千武夫妻前往日本訪問時,經過首爾與金光林初次相會,當時,他們參觀在首爾的古跡景福宮,便談到有關現代詩的創作與活動等許多瑣事。其中,值得一提的是,金光林構想的《亞洲現代詩集》出版編輯計畫。陳千武也很贊同,金光林拜託陳千武,去日本與秋谷豐(1922-2008)、高橋喜久晴(1926-2006)見面時,順便提及將來出版《亞洲現代詩集》一事。當天去日本的陳千武,會見高橋喜久晴時,便研究具體執行的出版計畫。

  韓國和臺灣,曾經在日本殖民統治之下,經驗過被劫奪各自民族所原有的語言,強迫使用日本語的痛苦。此事實,帶來了兩國怎樣的煩惱?透過詩文學交流的東亞詩人的骨子裡,擺脫不了的日語,是恐怕令人討厭的語言。尤其,曾受過日語而迫害的陳千武、金光林兩位,把日語負的體驗,反轉為有力地確認轉向於民族語言的愛而肯定了自己。把日語痛苦的記憶,化做昂揚各自的民族語使其發光。

  亞洲詩人交流的積極意義是:將置身於不同語言體系的現代詩人們,依據不同語言的表現方式,所創作出來的詩,交聚一堂,互相觀摩,以做為對於彼此所擁有語言的反省,進而促進自己本國詩的傳統之發揚。更重要的意義是,超越思想性和各自的立場。以平等的、和睦的、親善的態度來推展亞洲的現代詩和文學。

一、亞洲詩人會議:1980年11月23-25日,日本地球詩社主辦「東京國際詩人會議」。之後,於1982年11月14-17日,在臺灣笠詩社及臺中市立文文化中心主辦,臺北召開「臺日韓詩人聯誼會」。此為紀念《亞洲現代詩集‧第一集》的出版,由此亞洲詩人會議揭開了序幕,當時三國詩人齊聚一堂,超越語言、國界,熱烈論詩的盛況可以想象。由陳千武、金光林、秋谷豐共同主持。白萩(1937-2023)、高橋喜久晴等共有67人參加。
於1995年8月24-28日,在臺灣中部風景區日月潭教師會館召開「‘95亞洲詩人會議(第五屆)」。此大會的主題是「邁向二十一世紀的詩文學」,探討了亞洲文化和文學的前瞻性,其下在劃分「挑戰與回應」、「亞洲詩的光與影」兩個子題。

二、東亞詩書展:亞洲現代詩集雖然共出版了第六集,不過,重要的意義是,此顯現出詩人獨自的詩世界,和各國現代詩的特性,能夠一目了然的做觀察,同時可以瞭望亞洲現代詩整體面的流向。從1996年以後,無法仍是在臺日韓三國舉辦「亞洲詩人會議」,同時無法繼續出版「亞洲現代詩集」的情況下,由陳千武、金光林、山口惣司(1934- )共同討論,爾後,每年在臺日韓輪流舉辦「東亞詩書展」。該東亞詩書展舉辦到2006年。該年第九屆東亞詩書展結束以後,在臺日韓之間將近 7 年的時間沒有交流。

三、亞細亞詩感想祝祭:傳承已往臺韓兩國現代詩交流的精神,從2013 年 11月由筆者的介紹及促成下,在臺北市長官邸咖啡廳舉辦了「亞細亞詩感想祝祭」第一屆以來,每年輪流舉辦至2019年第七屆。之後,由於疫情的關係,停辦至2022年,今年10月又恢復在首爾舉辦第八屆亞洲詩的饗宴。

四、台灣詩所呈現的主題:在臺灣的現代詩自從戰前 1923 年新詩運動發生以來,就有寫實主義的主流傳統,臺灣現代詩和社會現實的關連極為密切。不管是戰前或戰後的詩人,都能刻意地凸顯出強烈的生活與現實的存在意識,投射出時代現實和社會的種種面向。六〇年代台灣現代詩:「官方意識形態所推動的反共文藝,傳統文化對現代詩的反對與壓抑,以及與五四傳統和台灣本土文學傳統的雙重斷裂」。在此,戰後臺灣的現代詩都是某種「現實論」的延伸變形,也就是說,詩人們都沒有離開文學「反映現實」的基本立場。「七〇年代有關現實的詩作分成兩個迥異的大方向。一個是「近看此地」的現實,另一個「遠眺那邊」的現實。前者主要是本土性作家,後者是大陸來臺的詩人。對於前者,面對生活空間的苦難,美學可能是奢移的用語;對於後者,詩的工具化也讓詩的存在產生問號。前者是腳踏實地的現實,後者是「以望鄉作為現實」,在前者的眼光中,後者是「遠離現實」。

五、韓國詩所呈現的主題:在韓國,1910 年至 1920 年代初期的新體詩,是否定定型形式,以散文詩型打出近世開化思想的產物。二〇年代,可以說是韓國現代詩的萌芽期。四〇年代則是屬於歷史的轉換期,因被帝國主義抹殺的語言政策,詩人們為保存韓語的詩拼命努力的時期;五〇年代的韓國詩人寫現代主義,以及愛國的作品,旨在克服韓戰的破壞。六〇年代的「4.19」和「5.16」等 改變民族命運的歷史事件,詩人們接受了生命力和傳統抒情主義的文藝復興,成為韓國現代詩史的轉捩點。七〇年代韓國詩人以其原創的構想和形式,面臨冰冷的隔離和不公平對待。八〇年代在韓國稱為「詩壇風暴」,此時期可分成二階段:八〇年代前期,政治文學雜誌泛濫;後期,自由主義盛行,許多認為政治環境已獲改善,確實也是如此。四〇年代至八〇年代,在韓國現代詩史上可以發現二個里程標,其一是與現實對抗的政治立場,另一是對自我無知,但盲從審美抗衡。九〇年代的詩,正在摧毀詩壇前面二個對立的爭執立場,以求奇異的和諧統合。

六、日本詩所呈現的主題:在日本,「現代詩形成的歷史,一方面乃是與傳統七五調格鬥,亦即形式與語言變革的歷史。另一方面乃是樹立詩人自身牢固不破的近代性(現代性)主體,從詩人內部發現,獲得現代知性的歷史。前者在大正中期口語自由詩運動以後,得到了相當好的結果。後者則移植歐洲前衛藝術,在日本掀起現代主義狂飆,未來主義,達達主義,超現實主義諸實驗與運動,從大正中期一直延續到昭和十年代,燦開了花朵」。由於發自要歌唱明治時代之新聲的「新體詩」運動,其誕生之聲響遍及人們的胸臆和社會各角落的記憶猶新。新詩運動歷經明治、大正、昭和各年代繼續 110 多年迄今,濃厚的反映著各時代的風貌自不待言。戰後日本的現代詩則邁入一個嶄新的階段,具有繼承戰前與否定詩史的雙重性格。

總之,東亞的區域內,在歷史上雖然有長期的文化交流和互為影響實績,但不同的地理因素和社會現實,也產生異質的文化生態。近代東亞,除日本外,落後於歐美,普遍受過區域外和區域內殖民主義的宰製和肆虐,二次大戰後大多走向解放、獨立、民主化的過程,顯然遭遇和過程的順逆程度有所不同,成就也有差別。亞洲現代文學的發展,普遍受到歐美的影響,是不可否認的事實,但如何保持與西方景況的同步發展,又能存留東方獨特的異質,成為亞洲詩人重大的挑戰。雖說亞洲詩人的語言不同,可是愛護和平的詩心,可能會超越國籍、意識形態和人種。在現代產業化時代中,詩本身該扮演文化的一個角色,探討對人類和社會有所貢獻的方法。這是在愈來愈複雜的國際化社會中,今日的詩人該走的方向。在文學上,成長中的亞洲詩人,往往過早地接受當年殖民國強勢文化或當前歐美霸權文化的深度影響,無形中,喪失本國文化內涵的自信。亞洲有廣幅不同的處境,但各國的詩人已經歷過類似的感情和精神上的苦悶、挫折、和希望。純粹和敏銳的共通的要素是人類未來的明燈。

亞洲詩壇的觀察:以臺日韓為中心

Poetry and the World

亞洲詩壇的觀察:以臺日韓為中心金尚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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